위빠사나 명상 (모곡사야도의 가르침)

 


관찰하지 않으면 무지몽매한 무명에 빠진다. 

무명은 윤회의 바퀴를 빠르게 돌린다. 

매순간을 알아차리면 마음이 생멸하는 것을 볼수 있다. 

그러면 무명이 소멸한다. 

무명의 시작 고리가 끊어지면 나머지 고리들은 저절로 소멸한다. 

윤회의 바퀴가 파괴된다. 

이것이 존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바른 길( 正道)이다.


마음이 아프면 마음이 아파하는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윤회의 바퀴가 계속 굴러간다.

성냄, 진심의 굴레에 빠지면 고통만 커진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건,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 마음을 관찰하라.

앞마음이 생멸하는 모습을 알아차리는 뒷마음이 바로 정도의 마음이다.

일어나는 모든것을 놓치지 말고 계속 바라보라

번뇌가 끼어들지 못할 만큼 깨어서 관찰하라. 


대념처경에는 번뇌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만큼 알아차림이 촘촘하면(이어진다면) 7일 만에 열반에 이를수 있다고 한다.


* 어떤 마음을 관찰해야할까?

일어나는 모든 마음을 알아차려라. 

생명을 관하는 마음 즉 정도(正道) 있으면 된다. 

실재 생멸을 보고,   소멸만 보게 되면 두려움과 혐오감이 일어난다. 

알아차림이 끊어지지 않도록 수행하면 베틀에 앉아 옷감 한필을 짜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끝낼수 있다. 조건이 무르익은 수행자라면 7일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할수 있다.


*위빠사나가 왜 노력할 가치가 충분한 수행이라고 자신하는가?

고통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의 고리, 윤회의 바퀴를 돌리는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연이어 돌아가는 고통의 바퀴를, 고통스런 갈애의 오온를 말끔히 끊어내는 수행법이다.

그래서 올바른 방법이다.

오직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만 끝없이 이어지는 존재의 고통을 끊어낼수 있다. 

반대로 알아차리지 않으면 무엇으로도 끊어 낼 수가 없다.


정도(正道) 닦아야 얻을수 있다. 

물질과 정신을 관찰하면서 생멸로 구분하고, 무수히 거듭 알아차려야 궁극적 실재를 볼수 있다. 그럴  무상, 고, 무아가 드러난다. 

다시 증장시켜 수천수만의 생멸을 알아차려야한다.


물질을 선호하면 물질을 관찰하라, 

느낌을 선호하면 느낌을 관하라. 

단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의 생멸을 관찰해야한다. 무

수히 일어나는 생멸을 지켜보는 힘이 부족하면 실재의 생멸을 볼수가 없다.

매순간 물질과 정신의 실상을 알아차려라.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소멸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면, 대상의 모든 속성은 결국 무상, 고 , 무아임을 알게 된다. 

마음의 생멸을 관찰하여 무수히 증장시킬때 수행자의 팔정도가 무르익어 도.과에 이를 것이다.  생멸의 실상을 쉼없이 거듭거듭 관찰해야 한다.

* 생멸을 왜 관찰해야하는가? 갈애, 교만, 사견을 그칠수 있다. 윤회를 거듭하는 원인을 소멸시킨다. 열반이 열린다. 그것이 이익이다.


*성자가 될려면 3가지 지혜가 있어야한다.

1. 느낌을 느낌 그대로 알아차리고

2. 일어나는 순간 곧바로 소멸되는 찰나 오온의 작용을 보고

3. 찰나 멸을 다시 확인하는 지혜를 모두 알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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