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어리석은 마음과 사나운 황소처럼 날뛰는 대상을 사띠의 밧줄로 말뚝에 묶어라 (알아차림)

 수행은 헤매는 마음을 붙들어 매는 게 아니다. 헤매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다. 요동치는 마음을 알아차릴 뿐이다. 달아나면 달아나는 줄, 망상하면 망상하는 줄, 궁리하면 궁리하는 그대로 알아차릴 뿐이다. 알아차리면 됐다. 고요해지도록 만드는게 아니다. 고요함, 적정, 청정 등을 갈망하는 것은 명상이 아니다. 고요함이 좋은 것이라고 집착하지 마라.  그저 알아차릴 뿐이다. 좋든 나쁘든 고요하든 소란스럽든 그저 알아차릴 뿐이다. 어리석은 마음과 사나운 황소처럼 날뛰는 대상을 사때의 밧줄로 말뚝에 단단히 묶어라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마음은 거친 황소와 같다. 소를 말뚝에 묶는 것처럼, 어리석고 거친 마음은 사띠의 밧줄로 묶어 말뚝에 매어 두어야 한다. 어디에 묶어야 할까? 코끝을 관하는 사람은 코끝이 말뚝이다. 몸 전체가 말뚝이다. 무엇을 묶어야 할까? 마음이 수행 주제만을 맴돌도록 단단히 묶는다. 대상을 말뚝에 묶는 것은 정진ㄺ이다. 집ㅈㅇ해서 관찰하면 마음이 제멋대로 날뛸수 없다. 이리저리 방황하는 빈도가 점점 줄면서 대상에 집중한다. 요동치는 마음으로는 물질과 정신의 실재는 알아차릴수 없다. 집착은 요동치는 마음에 숨어든다. 정진을 해야 마음이 순백의 스카프처럼 깨끗해진다. 번뇌와 결합하면 애타고 지치고 괴롭게 물든다. 정진을 해야 마음이 탐심, 진심, 치심의 번뇌들과 붙지 않는다.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도록 항상 사띠를 챙기며 살아야 한다.

몸이 아플때 알아차림 (쉐우민 사야도)

 좋든 싫든 사띠뿐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것에 사띠를 두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것에 사띠를 두라. 처음에는  코끝에 사띠를 두라 숨이 나갈때마다 알고 들어올때마다 알아차려라 통증 따로, 나따로, 쑤시고 저린것 따로, 나 따로... 이렇게 따로 따로 봐야 한다. 나라는 건 없다. 아픈 성품을 지닌 법, 변화하는 법만 있을 뿐이다. 알아야 할것과 아는 것, 둘 뿐이다. 어디에 있나? 나라는 놈이 어디있나? 거듭 점검하면 견해가 정리될것이다. 물질과 정신이 생겨나고 파괴되고 소멸되는 것을 보면 견고하고 항상한 것은 아무데도 없구나 하고 진실을 알게 된다.  진실을 알면 거짓에서 벗어난다. 지금 생겨난 것도 이미 과거가 되어 파괴된다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 물질과 정신만 있음을 있는 그대로를 알기 대문에 윤회하는 존재인 나, 자아란 그긋된 견해임을 알고 청정해진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 없음을 알고. 있음을 알아가면서 견해가 청정해진다. 알아차려라 없는 것은 없다고 알아차려라. 있는 것을 있다고 알아차리면 그릇된 앎과 사견에서 벗어난다. 깨끗하게 사라질것이다. 질병과 마음을 구분하라. 병에 걸려 저림, 통증, 뻣뻣함 등 증상이 나타나면 괴로운 마음이 일ㅇ난다. 질병 자체를 관찰하기는 벅차다.  마음의 느낌만 관찰하라.  질병과 괴로운 마음을 따로 따로 알아차려라. 질병과 견디기 싫어하는 마음은 연관이 없다. 마치 구경꾼처럼 환자를 대하는 의사처럼 관찰하라. 나와 뒤섞이기 때문에 고통에 함몰된다. 아프고 견딜수 없고 자세를 바꾸려는 마음, 견디기 싫어하는 그 마음만 알아차리면 된다. 물질과 정신만 실재다 그럼에도 내가 수행한다. 내가 관찰한다. 내가 알아차린다.  내 수행이 특출나다.  내 사마디가 훌륭하다 라고 한다. 사띠를 챙기지 않기 때문에 나 내것이라며 집착을 키운다. 사띠를 놓치면 수행이 나아질 수 없다. 바른 알아차림, 바른 앎을 지닌 사람은 실재를...

알아차리기 2

⃞   상체를 곧추세우고 머리를 똑바로 들어라. 집중하지 마라,  사띠(알아차림)로 균형을 잡고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라. 수행은 지혜를 키우는 선업이다.  수행한다고 강하게 제어하지 마라. 팽팽한 긴장을 풀어라,  억누르지도 마라. 성품 그대로 아는 것이 정견이다. 사띠를 두어라. ⃞   일어나는 순간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물질과 정신은 덩어리가 되어 집착이 들어온다. 정말 나라고 착각하며 사견에 집착하면 사견에 집착하게 된다. 일어나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면 물질과 정진의 덩어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질과 정신이 무상의 고통에 있음을 아는 지혜가 집착을 벗어난 사띠다. ⃞  사띠는 명상센타에서만 책ㄱ는 게 아니다. 집에서도 챙겨야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챙겨라. 사띠를 놓치면 어떻게 되나? 불선업을 짓는다. 사띠를 놓치는 순간 탐심, 진심, 어리석음이 자리를 꿰찬다. 그 순간부터 어리석음에 빠진다.  사이사이에 탐심, 진심이 끼어든다. 온종일 그렇게 보내서야 되겠나? 사띠는 언제, 어디나 둘수 있다. 운전할 때도 사띠를 챙길수 있다. 먹고 마시고 요리할 때도 사띠를 챙길수있다. 집중만 강해지면 사띠가 경직된다.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사띠가 생기는 게 아니다. 사마디에 압도당ㅎ한 사띠는 관념에 빠지게 된다. 인위적인 관념만 알게 될 뿐이다. 실재 생명을 숨겨 버린다.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의식을 두라 사띠를 얻으려고 용을 쓰면 탐심이, 못 얻어서 애가 끓으면 진심, 생긴줄도 모르면 치심이 생긴다.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사띠로 알아차려야 마음을 보호할 수 있다. 

매순간 알아차림 놓치지 않기 (쉐우민 사야도의 가르침)

매순간 알아차림(사띠) 놓치지 않으려면? 지붕이 얼마나 단단한가는 폭우가 퍼부으면 절로 알게 된다. 비가 새면 지붕을 덧씌우듯이 알아차림을 놓쳤을때는 좌절하지 말고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거듭거듭 덧씌우면 된다. 비바람과 햇볕을 막아주는 지붕재료는 다양하다. 도기, 벽돌, 양철, 야자잎, 나무판자, 시멘트, 판넬 등 재료가 많다. 그중에서 나에게 적당한 하나를 선택한다. 지붕을 고쳤는데 비가 샌다면? 재료가 부실해서일까? 기술자가 서툴러서일까?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지불을 꼼꼼하게 덮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무슨 재료로 지붕을 덮었건, 공사를 꼼꼼하게 잘했다면 비가 새지 않는다.  호흡을 알아차리기 해보자 바람이 더디를 스치며 나가는가, 어디를 스치며 들어오나를 관찰하는 것은 어려운것도 아니다. 들어오고, 나갈때 코끝을 가볍게 스치며 드나든다. 가만히 손가락을 대보면 바람을 느낄수 있다. 마음이 망상을 따라가지 않도록, 코끝에 스치는 발람에 집중해 알아차려라. 알아차리는 순간, 어디에 고통이 있는가,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러면 행복한 상태가 아닌가. 코끝은 물질이고 바람이 부딪치는 것을 아는 것은 마음이다. 코끝을 관찰하고 알아차려라 지금은 코끝 그 자리에만 마음을 두어라. 갈수록 힘이 커질것이다.

매순간 알아차리기 1

 우리 마음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관심을 가지는 습성이 있다보니 자신을 보는 일을 거의 잊고 산다.  자신에게 자주 질문하고 스스로를 일깨워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한다. -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 몸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 자연스럽게 알수 있는 것부터 알아차리기: 배의 부름, 꺼짐, 열기, 소리등 - 손바닥이 서로 닿아 있음을 알아차리기 보고, 듣고, 덥고, 춥고, 닿아 있거나 뻐근함을 알아차리는것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집중할 필요도 없다. 관찰하기도 쉽다. 걸을때, 먹을때 일상에서 계속 알아차림이 있어야 한다. * 질문: 대상이 있고 지켜보거나 관찰하는 마음이 있다 어느것이 더 중요할까? 답: 지켜보거나 관찰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 질문: 코끝의 들숨, 날숨과 배의 부름, 꺼짐 중 알아차리기 위해 어느것이 더 좋은 대상입니까? 답: 더 좋은 대상이란 없습니다. 대상은 단지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할일은 알아차림을 자연스럽게 점점 늘려가는 것이다. * 일어나는 무엇이든 다 알아야 한다. 일어나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모든 대상들을 알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이순간 마음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 마음을 안으로 돌리기 - 어떻게 해야 마음을 안으로 돌릴수 있을까?   지금 손을 떠올리고 손에서 어떤 느낌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하면 마음은 곧바로 손으로 향한다. 만약 '머리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지? 라고 질문하면 마음은 즉시 머리로 향하게 된다. 이처럼 육문( 六門) (또는 육입 (六入) 안․이․비․설․신․의 (眼耳鼻舌身意)  )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생각만 해도 마음은 이미 안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또 다른 방법은 마음이 바깥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러면 마음이 몸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몸의 현상이...

위빠사나 명상

'위빠사나'란 ? 위(특별하게) 빠사나(보다) 소리가 들리면 그냥 알아차리고,   코, 혀, 몸으로 냄새, 맛, 감촉과 접촉할때도 그저 알아차려라.    마음으로 생각할때도 그저 알아차려라. 범부(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시각이 아니라 현재 찰나의 생멸하는 물질과 정신을 관찰해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관법이다. 물질과 정신을 능숙하게 관찰할때 지혜가 성숙한다.  위빠사나는 눈에 보이는 형상이 생멸하는 것을 관찰한다.  귀로 소리를 들을때, 코로 냄새를 맡을 때, 혀로 맛을 느낄때, 몸으로 접촉을 느낄 띠마다 대상이 생멸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정신은 느낌, 지각, 형성력, 의식이다. 모두 분명하게 인지할수 있기 때문에 위빠사나의 대상이 된다. 삼라만상이 위빠사나의 대상이다.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은 실재하는 물질과 정신이다. 물질과 정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이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관찰한다면 세상 만물이 수행의 대상이다.  관념이 아닌 실재의 성질과 작용에 집중해야한다.  관념을 대상으로 삼거나 주목하면 안된다. 오직 실재하는 대상에 주목해야 한다.  실재 대상만을 인정하고서 봐야 한다. 물질과 정신은 영원하지 않다.  때가 되면 생겨나고 때가 되면 파괴된다.  소멸할때가 되면 소멸하고 떨어질 때가 되면 떨어진다.  아기때의 몸은 지금 내겐 없다.  봄에 싹을 틔웠던 잎은 가을이 되면 떨어진다.  다음 봄이 오면 또 새싹이 피어난다.  이처럼 모든 생명은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소멸한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근심에 겨워 울기도 하고, 가슴을 치는 고통속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늙지도 병들지도 않고 영생할 수는 없을까?  하지만 무상, 고, 무아의 진리를 내가 지배할 순 없다.  그저 지혜가 닿는 만큼 숙고하고 믿음으로 숙고할 뿐이다.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