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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맛을 알다

 집 근처에 작은 산이 있다. 아니, 산이라기보다는 공원이 맞겠다. 공원은 크지는 않지만 둘레길도 잘 조성되어 있고 적당히 높낮이가 되어 있어서 운동하기 딱 좋은 코스이다. 약 한 시간가량이면 둘레길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공원이 집 근처에 있지만 자주 가지 못했었는데 한번 다니기 시작하니 계속 가게 된다. 날도 따뜻해졌고 볕도 좋은데다 그늘도 많아서 산책 겸 운동하기는 정말 좋은 코스이다. 요즘은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완주하고 있다. 발에는 온몸이 다 들어있다 할정도로 라고 하니 발을 마사지 해주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해서, 맨발로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다소 거친 흙길에서는 발이 따가와서 어기적 어기적 걸을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호들갑을 떨면서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날이 거듭될수록 차츰 발의 감각이 무디어갔다.  맨발로 완주를 해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더운 몸의 열기가 발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시원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맨발 걷기를 하면 혈액순환이 잘돼서인지 얼굴빛이 더 환해 보인다. 그리고 심리적 으로도 안정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땅에서 왔기 때문에 땅을 밟을 때 엄마의 품속처럼 포근함을 느끼기 때문일까. 요즘 명상을 하은데 걸을 때도 명상을 하면서 걷는다. 일명 걷기 명상이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집중하고 있다. 돌을 밟을 때의 딱딱하고 불편한 느낌, 거기에서 오는 감정들, 부드러운 흙을 밟을 때의 쫀쫀한 느낌, 모래 같이 사각거리는 느낌, 비가 온 날은 축축한 느낌…. 그 느낌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맨발 걷기와 명상을 하면서 가슴 두근거림도 사라지고 뭔가 안정적으로 되어 가는 것 같다.

어버이날

 거의 1년만에 대림동 할머니를 뵈러갔다. 잡짤이 토마토를 한 박스도 잊지 않았다. 집 현관문을  두드려도 안에서 아무 소리가 안들려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드렸다.  집에만 있기에 갑갑하셔서 잠시 산책을 나왔노라시며 금방 갈테니 기다리라셨다.  주택이라 담장에는 장미덩쿨이 곷망울을 머금도 흐드러지게 늘어져 있었고 소소하게 심어놓은 꽃나무들도 재 각기 아름다움을 풍겨내고 있었다. 잠시후 골목에서 나타나셨다.  작년에 처음 뵜을때는 거동이 아 주 불편하셔서  많이 걱정을 했었는데 오늘 보니 많이 건강을 회복하셔서 혼자 산책도 다닐 정도였다. 참 다행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근황도 듣고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드렸다. 큰집에 홀로 계시니 참 많이 외로우신것 같았다.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봇물터지듯 계속 계속 하셨다. 요양보호사가 당분간 오지 않은다고 하더니 씽크대에는 설거지가 한 가득쌓여있었다. 얼른 팔을 걷어 부치고 설거지를 했다. 연신 그만하라고 하셨다. 팔에 힘도 없으셔서 일을 할수 없는 사정을 아는 입장에서 도저히 그냥올수 없었다. 미안하셨던지 미역을 한 봉지 들고 나오셨다. 여름에 냉국해 먹기 좋으니까 가서 해먹으란다. 남편이 살아계실때는 왕비처럼 살았다면서 남편의 부재를 아쉬워하셨다. 85세의 적잖은 나이에 건강도 좋지 못하니 얼마나 불편하고 때로는 서러울까 생각하니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버이날이라고 해서만 찾아 올것이 아니라 한달에 한번씩은 꼭 방문해서 살펴드려야겠다.

미움

미움마음의 끝에는 빼앗김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나만의 권리, 권력을 빼앗겼을때 미움이 일어난다. 특히, 어릴적 내 스스로 결정해서 해야하는 일을 부모님이 억지로 시켜서 하게되니 권력을 빼앗긴 것이고, 그것 때문에 부모에 대한 미움이 일어나게 된다. 빼앗김으로해서 지키지 못했다는 수치심도 더불어 올라오게 된다. 빼앗김으로 해서 오는 억울함, 수치심, 질투심 등을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줄 때 해소가 된다.  

자애명상

 사람으로 생명을 부여 받고 인생을 살아간다. 길어야 100살이고 짧게는 60살부터 죽음을 향해 줄을 서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온 이유는 많은 경험을 함으로써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한다. 엄마를 통해 한 배에서 나온 사람들도 있고 여러 엄마를 통해 사람이라는 형상으로 태어났다. 몸안에 영이 주어지고,  그 영이 육체안에 들어가니 때가 되어 세상밖으로 나오면 영이 육을 끌고 다니면서 세상에서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그 많은 경험중에서 만나는 감정들이 자신이라고 착각하면서 굳어지고 견고해져서 자아가 되어 또 다른 나로 나를 이끌고 다니기도 한다. 그 자아의 생각에 따라 참 나는 사랑의 감정 또는 미움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면서 성장하기고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사람으로 왔다는 것만해도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일인가.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로 겨우 10여년을 같이 지내다가 따로 헤어져서 혼자의 삶을 살지만 한 엄마를 뒀다는 이유로 서로 걱정하고 돕는 마음을 갖는 것도 정말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들에게 자애를 보낸다. 사랑을 보낸다. 감사를 보낸다. 자비를 보낸다.  형제 자매라는 이유 하나밖에 없고, 기억할 수도 없이 고작 어릴적 잠깐 같이 한것일뿐이지 않은가. 내 형제들이여,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의 하나하나는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자도, 궁핍해도, 감정적으로 어려워도, 쫄보여도...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인것이니 분별심을 내지 않아야 하리라. 그저 자비와 사랑과 감사를 보낼 대상일 뿐인것. 

충분한 삶을 살자.

아브람 알퍼트가 쓴 책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에는  위대한 삶 보다는  충분한 삶을 이야기 한다. 위대한 삶과 충분한 삶은 과연 어떤삶을 말하는 것일까?  위대한 삶이란 경쟁의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물질을 더욱 많이 쌓고 명예를 누리기 위해 남을 해하거나 자신에게 애를 쓰며 사는 삶을 말한다.   그렇다면 충분한 삶이란 어떤삶인가? 충분하다는 것을 다른말로 하면 자족이라 하겠다. 자신이 가진것에 대한 만족한 마음을 소유하는 것.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도 체념이 아니라 만족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말한다. 어쩔수 없는 것들을 개선해 보겠다고 쫓아 다니다가 인생을 다 허비하기도 하는데 현실에 대한 만족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마인드를 갖는다면 그대로의 자신이 행복해 질수 있다 이런 가치관으로 산다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싸울일이 없을 것 같다. 가진게 충분하니 뺏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나눠줄것이고 마음 또한 여유로워 이웃과도 평화롭게 지낼수 있을 것이다.  자족하는 충분한 삶을 살면 감사와 겸손, 사랑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충분한 삶은 번영하는 삶으로 이끌것이다.

들숨날숨 실습

 5분의 알람을 맞추고 들숨날숨 명상에 돌입했다. 다리부터 힘을 빼고 점점 허리로 어깨로 올라가며 몸의 힘을 뺐다. 몸에 힘을 빼면 마음까지 힘이 빠진다고 가르침 받았기에 전신의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힘이 어느정도 빠졌다고 생각하고 호흡에 돌입했다. 아니 호흡에 들어가기 전 몸에 힘을 빼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왔다갔다 오후에 만났던 사람들과 그 풍경, 분위기 등등 1분도 안되는 시간에 그렇게나 많은 생각들이 들락거렸다. 이제 호흡을 시작하려고 알아차리려니 그 마져도 쉽지 않았다. 들숨 날숨.... 그래,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라고 했지... 또 잡념이 들어왔다. 다시 들숨 날숨.... 오늘 오후에 봤던 풍경들이 참 이뻤는데...  아니 다시 들숨 날숨.... 아까 떡볶기가 좀 매웠나? 너무 늦게 식사를 했었지. 저녁 7시쯤에 끝났으니까 너무 늦은시간까지 밥을 먹었네..  에효, 다시 들숨 날숨.... 그래 암에 걸렸다는 그 사람은 참 안됐다. 그래도 동병상련의 감정이 들어서 그에게 자애를 보내는게 옳지.  아니, 들숨 날숨.....  참 어렵구만, 이렇게 잡념이 들어오니 언제 들숨날숨을 하겠어 다시 집중하자  들숨 날숨...... 땡!! 5분의 시간이 지나버렸다. 집중도 하기전에 소중한 시간을 소비해 버렸다고 조금은 자책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도 끝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 진것이 느껴진다. 오늘 진쏠미의 유튜브 영상을 시청했다. 모든 것이 있음의 상태는 굉장히 차분하고 안전된 마음이라는 것. 그래서 명상을 하면 그런상태를 만들수 있고 환경도 바꿀수 있다는 이론이다. 잠재의식을 바꾸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들숨날숨의 기적을 만들어 가보자.

들숨남숨 호흡명상

우리몸에서 들숨과 날숨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호흡은 의식할 새도 없이 너무나 자 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데 그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려본적이 있을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흡명상을 하니 그냥 편안하게 알아차려 보라고 한다.   호흡이 들어오면 그저 호흡이 들어오는 줄 알고, 호흡이 나가면 호흡이 그저 나가는 줄 알면 된다 . 들숨이면 들숨인줄 알고 날숨인 것을 알면된다 .  호흡명상은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알아차리는 명상법이다 .  호흡을 통제하려하지 말고   그저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알아차리면 된다 .  편안하게 앉아서 창밖에 보이는 바다를 지켜보듯이 긴장이 풀린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려라 .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면 마음은 고요해진다 . 잡념이 끊임없이 일어나더라도 불만족하지 말고 현재에 내가 가진 호흡에 현재의 마음상태에 집중해라 .  처음 명상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유도맨트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유도 맨트를 하는 것은 마음에 지시를 주는 것이다.  사띠: 알아차림, 기억하는 기능 내가 지금 알아차려할 것이 무엇이고 버려야 할것이 무엇인지 마음에 지시를 해 주면 좋다.  지금은 과거와 미래를 버려야 할 때이고 들숨과 날숨만 알아차릴때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도 과거나 미래가 생각난다면 다시 현재로 돌아오라고 계속 유도해 준다. 세상에서 살다보니 사람들의 마음은 거친상태이다. 마음이 안이 아니라 밖으로 향해있다. 명상을 하기 전에 마음속의 티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몸의 긴장을 풀면 마음의 긴장까지 풀어진다. 마음의 거친것들이 가라앉게 된다. 과거와 미래도 거친것의 일종이다. 이런 거친 것들을 버리면 마음은 현재로 돌아온다. 몸을 알아 차리면 현재의 몸 상태를 알게된다. 과거와 미래도 버리고 현재의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면 요동되는 마음이...

사설쓰기

 어떤 지인의 조언으로 요즘은 사설을 쓰고 있다. 정식으로 쓰려면 원고지에 정자로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 쓰기 하듯 써 내려가야 하지만 자판을 두드리는게 습관이 되다보니 원고지 대신 보고 배끼듯이 쓰고 있다. 사설은 팩트를 그대로 써 내려가는 일반기사와는 다르게 글쓴이의 주장이나 의견을 써내기 때문에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말의 요지를 생각하게 된다.  기승전결에 입각하여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문장의 이해도도 높일수 있고 무엇보다 시사에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신문 사설 배껴쓰기를 강력히 권장한다. 다 쓰고 나서 나만의 제목을 작성해보고 원래의 제목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목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내용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되니 일거 양득이라 할수 있다.

날라기리 (성난 코끼리)가 나를 향해 달려올때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부처님도  그당시 기득권자들에게  핍박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놓아버리기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부처님이 어느날 탁발을 위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사람들이 성난 코끼리를 부처님이 가시는 길에 풀어놓아서 부처님이 해를 당하도록 했다. 제자들은 달려오는 코끼리를 보고 도망가기 바빴으나 부처님과 상수제자는 그자리에 가만히 서계셨다. 도망간 제자들은 부처님이 신통력으로 코끼리를 제압해서 멀리 날려버릴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신통을 발휘하기 보다는 코끼리에게 자애 명상을 보내면서 코끼리와 부처님 사이에 평화의 에너지를 계속 보냈다. 성난 코끼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부처님께 절을 하고 뒤돌아서 갔다고 한다. 이것은 부처님과 코끼리의 이야기를 하려는것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도 때로는 통제가 안되게 미쳐 날뛰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달래고 알아 체려고 해도 뛰는 가슴은 진정이 안될때 말이다. 이는 마치 부처님을 공격하려고 달려드는 그 코끼리와 진배 없다. 그럴때는 자애를 보내면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래 괜찮아, 그래도 돼, 괜찮아 내 사랑하는 마음아, 괜찮아. 그래도 돼.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계속 자애를 보내면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순한 양이 되어 스르르 잠잠해 진다. 정말 귀한 가르침이다.